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코디로 시작된 나의 전성시대! 임경숙 총국장

 

   먼 길을 떠나야 할 때일수록 목표를 짧게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. 반대로 단순한 목표들을 실천해 나가다 보니 어느덧 먼 길을 지나오게 된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. 2월 인천 남부총국의 신입 총국장이 된 임경숙 총국장의 이야기가그러한데요. 2001년 코디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이제 13개지국(팀장 27, 코디 250여 명)을 관리하는 총국장이 되었습니다.

 

"57세로 정년이 다 돼 가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, 회사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겨줘서 무척 감사하죠." 임경숙 총국장이 코웨이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18년째. 아이였다면 자라서 성인이 될 만큼의 세월인데요. 그 긴 시간 동안 그녀가 한 길만을 성공적으로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.

 

 

엄마라는 이름이 이끈 길에서 나를 찾다

 

 오랜 시간 가정주부로 살아온 그녀가 코디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초등학교, 고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서였습니다. 그 전까지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가족이나 친척들과도 대화를 잘 못 했던 그녀였기에,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코디 생활이 힘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. 


 “힘이 들 때면 아이들을 떠올렸어요. 아이들에게 항상 열심히 하라고 말해왔는데 엄마인 내가 힘들다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.”


 그래서 매일 말하는 방법을 연구하고, 지국 선배들의 노하우를 귀담아들었다고 합니다. 그런 노력 덕분인지 1년 6개월만에 팀장으로 발돋움할 수 있었는데요. 그 단계에서 그녀는 자기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게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을 발견합니다.

 “처음에는 꿈이란 건 없었습니다. 매달 돈을 벌어서 아이들 잘 케어하자는 생각이었죠. 그런데 팀장이 되고 나서 조금 달라졌어요. 그동안은 아이들을 위해 일했다면 이제는 나를 한번 찾아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. 그렇게 지국장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죠. 그 후로는 꿈이 있기에 더 열심히 달렸던 것 같아요.”


 그 후 3년 만에 지국장으로 승진한 임경숙 총국장은 일과 가정, 두 곳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며 12년간 지국장 생활을 이어갑니다. 


 “제가 지국장이 되고 난 후에 어느 날 아이들 핸드폰을 봤는데 제 이름이 ‘자랑스러운 우리 지국장님’이라고 저장돼 있는 거예요. 그 순간 굉장히 울컥하면서도 뿌듯했습니다. 일을 시작한 이유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전 크게 성공했다고 생각해요.”

 

 

또 다른 원동력은 바로 고객

 

 단계마다 그에 맞는 동기부여를 해온 임경숙 총국장이 사실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았던 것은 바로 고객입니다. 코디 업무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지칠 수도 있는데, 오히려 그것이 직업적 장점이었다고 하는데요. 


 “코디 생활을 하면서는 안 좋았던 점보다 좋았던 점들이 훨씬 많아요. 고객들이 항상 저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. 어떤 분은 식사까지 차려놓으시고, 또 어떤 분은 새로 짠 들기름 한 병을 챙겨놓으시고 기다리셨습니다. 그런 분들을 뵈면서 많은 힘이 됐죠.”


 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으로 그녀는 출산을 앞두고 있던 한 고객을 떠올립니다. 출산 선물로 안개꽃 한 다발을 드렸는데, 고객이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기뻐하셨다고 합니다. 그분의 친구가 코디였기 때문에 다른 목적 없이, 정말 축하하는 마음으로 드린 선물이었는데 얼마 후 청정기랑 비데, 정수기를 계약하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. 


 “그때 너무 기뻤죠. 어떤 이익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닌데 고객도 그런 진심을 알아줘서 감동스러웠어요. 처음부터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게 결국은 돌아오는 것 같아요.”


 그녀에게는 이런 일화들이 무수히 많습니다.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택시가 안 잡혀 병원에 못 가고 계시기에 자신의 차로 모셔다드린 일, 맞벌이 가정집에 갔더니 먹을 건 없고 설거지감만 쌓여 있기에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온 일 등. 그저 조그만 선의로 한 행동이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준 고객들이 더 큰 보답으로 돌려준 일 말입니다. 이러한 진심의 연결고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.


 “팀장이나 지국장이 되고 난 후에도 관리했던 고객에게서 종종 연락이 왔어요. 얼마 전에는 제 첫 소속 지국이었던 곳의 코디가 그러더라고요. 제가 담당했던 집에서 여전히 임경숙 코디가 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하신다고요. 십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고객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.”

 

 

100세 인생 시대의 맞춤 직업, 코디

 

 출근을 하면 매일 잊지 않고 지국장과 팀장 한 명,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굿모닝 인사를 한다는 임경숙 총국장. 애초 목표였던 지국장을 넘어 총국장이 된 지금, 꿈을 초과 달성한 그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. 


 “총국장은 코디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뒤에서 언덕이 돼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. 저는 우리 조직원들이 ‘일하는 게 행복하다’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.”


 많은 코디가 자신처럼 일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임경숙 총국장. 그래도 일이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,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요. 코디 시절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그녀는 다음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으며, 제품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. ‘할 수 있다’고 마음먹으면 ‘그럼 어떻게 할까?’로 생각이 이어지면서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라고 하네요. 젊은 사람들보다 더 넘치는 열정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끈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. 


 “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나이에 비해 왜 이렇게 젊어 보이냐고 물어봐요. 저는 그 비결이 지금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. 이제는 100세 시대이니만큼 꾸준히 돈도 벌고 일도 해야 해요. 그런 면에서 코디라는 직업이 가장 좋지 않나 싶어요. 내가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, 건강만 허락한다면 정년 제한 없이 계속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.” 

 


 성공적인 커리어로 두 아이의 롤모델이 되었던 임경숙 총국장은 이제 직업전선에 있는 많은 엄마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. “관심은 있지만 할 수 있을까, 주저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고민하지 마시고 코웨이의 문을 두드리시라!”라는 그녀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. 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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